2004년 3월 14일 일요일

[펌]IMF때보다 더 위기…처세서만 '득세'

IMF때보다 더 위기…처세서만 '득세'




  

끝없는 출판불황 어디까지 얼마 전 한 단행본 출판사 편집장은 신문에 난 책 광고를 보고 새삼 충격을 받았다. 최근 베스트셀러로 ‘잘나가는 책’인 <선물>의 광고 카피가 ‘30분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란 점을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책이 안 팔린다고 해도 책이 내용이 있고 좋다는 것이 아니라 한번 훑어만 봐도 가볍기만 한 책이라고 강조하는 것을 보고 나니 순간 혼란스러웠어요. 이런 불황 속에서는 이렇게 책을 내야 하는 것인지…, 답을 모르겠습니다.”
‘외환위기 때보다도 더하다’는 출판계 불황이 좀처럼 풀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장기화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면서 출판계는 여러가지 타결책을 시도하며 몸부림치고 있지만 근본적인 대안은 찾지 못한 채 시름만 깊어지고 있다. 최근 출판불황이 빚어내고 있는 풍경과 시사점을 짚어본다. 편집자


■ 불황, 어느 정도인가

정작 수치로 드러나는 상황은 사실 그렇게 나쁜 편은 아니다. 대표적 오프라인 서점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경우 올해 1~2월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오히려 1% 남짓 늘었다. 온라인 서점 알라딘 역시 최근 매출은 별 차이가 없다. 사회 전반적인 경기 침체의 영향이 큰 만큼 출판계만 불황을 겪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출판계가 ‘심각한 불황’이 분명하다고 보는 까닭은 팔리는 책과 안 팔리는 책의 양극화가 심해졌고, 장기화에 따른 불안이 커지면서 ‘불황체감도’가 몹시 커졌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좀처럼 신간이 진입하지 못한 채 기존 베스트셀러들이 장기집권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상황이 낫다는 경제·경영서를 비롯한 실용서 분야에서도 이런 쏠림현상은 마찬가지다. 한 경영서 전문 출판사 편집장은 “매출에서 정통 경제·경영서 비중은 30%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처세서들”이라고 말했다.

또한 인문·문학서적들의 초판 발행부수가 지난해부터 최소단위인 1000부 선까지 내려갔음에도 초판이 시장에서 소화되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는 것도 출판사들을 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초판을 겨우 1000부 찍는데도 팔리는 데 1년이 걸릴지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상황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팔리는 책·안팔리는 책 양극화
■ 너도 나도 ‘처세, 경제’

인문을 비롯한 전통적 분야의 부진이 구조화하고 시장중심이 처세서나 자기계발서, 경제·경영서쪽으로 옮겨가면서 많은 출판사들이 이 분야에 뛰어들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처음으로 경제·경영서를 펴낸 웅진닷컴의 경우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이쪽 분야에 승부할 계획이다. 역시 ‘메이저’급인 시공사도 최근 경제·경영서를 시작하기로 결정했고, 실용서 분야의 최강자들인 넥서스와 영진도 경제·경영쪽을 본격적으로 펴내기로 했다. 인문책을 주력으로 하다가 실용이나 처세쪽으로 눈길을 돌린 출판사는 그야말로 부지기수다. 그러나 출판사들이 핵심역량이 아닌 분야의 책을 내다보니 수준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인문서 초판 지난해부터 1000부 찍어
'딱딱한 글쓰기'고수 사회과학서는 전멸
'부자코드''개인관리' 쏠린 편식 심화
대박 좇는 시류출판 대신 전문화 매달려야

여기에 최근 <아침형 인간> <메모의 기술> 등 일본 실용·자기계발서들이 인기를 끌면서 그동안 출판시장에서 찬밥 신세였던 일본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한국 출판사들의 경쟁으로 일본 실용서의 선인세는 최근 1년 전에 비해 50% 가량 오른 상태다. 더난출판 이홍 부장은 “요즘 줄지어 나오는 일본책들의 경우 대부분 아주 사소한 기능적 측면에 대한 것들이거나 획일적 인간화를 부추기는 책들이란 점에서 다변화해가는 사회 흐름과는 오히려 상반되는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이 부장은 경제·경영 분야에서도 경영이나 조직 등 거대 담론보다는 ‘부자 코드’와 개인관리쪽에 과다하게 책이 몰리는 편식현상 역시 외국의 출판경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고 짚었다.

획일화 부추기는 일서 번역붐
■ 인문서는 위기이자 기회, 사회과학서는 끝모를 추락

정통 인문서들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지만, ‘인문서=딱딱한 책’이란 고정관념을 깨는 책들은 인문서의 가능성을 다시금 확인시켜주고 있다. 푸른역사, 그린비 등 참신한 기획·편집과 새로운 글쓰기로 무장한 책들을 펴내는 출판사들이 그 주역들이다. 그린비 유재건 대표는 “다른 출판사들이 인문서가 안 된다고 포기하는 실정이어서 오히려 경쟁이 줄어드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지금이 인문전문 출판사로 확실하게 이미지를 굳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사회과학서는 소생의 희망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 한 인문·사회 전문출판사 대표는 “사실상 사회과학쪽 기획 출판은 손을 놓은 상태”라고 아쉬워했다. 이처럼 사회과학서들이 ‘전멸’하고 있는 것은 대학생 독자가 전무한 탓도 있지만 사회과학쪽 저술가들의 문제가 크다고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필자가 누구인지 전혀 드러나지 않는 딱딱한 논문식 글쓰기를 고집하면서 출판분야의 빠른 변화를 외면한 탓이다.

고정관념깨는 인문서는 희망
■ 대안은 없나

전문가들은 어차피 책이라는 활자매체의 환경이 구조적으로 변한 만큼 지금이 특별한 불황상황이 아니라 오히려 평상시라고 보아야 한다며 출판계가 외부요인을 탓하지 말고 자체적으로 새 길을 뚫어야 한다는 아픈 진단을 내리고 있다. 동시에 출판계만의 차원이 아닌 사회적 차원에서 독서문화를 바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부터 시작된 ‘1도시 1책읽기 운동’이나 조만간 출범을 앞두고 있는 학교도서관연대 등이 추진하려는 학교도서관살리기 운동 등이 그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국출판연구소 백원근 선임연구원은 “출판사들이 더욱 전문화로 역량을 강화해야 할 때에 돈 되는 분야만 쫓아가는 시류출판만 해서는 스스로를 외길로 내모는 자업자득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오락이건 학술이건 그 자체로 순도 높은 콘텐츠로 승부하는 것이 결국 해결책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도서평론가 이권우씨는 “기본적으로 도서관의 수서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공공도서관에 대한 인적·물적 지원을 강화해 선진국처럼 공공도서관이 인문서 등을 일정부분 소화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또한 입시위주 교육 때문에 현재 독서시장에서 청소년이 제외되고 청소년출판이 없는 기형적인 현상이 해결되려면 학교도서관 활성화와 함께 독서수업을 교과와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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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신도 요즘 하는 생각이나 홈페이지에 쓰는 글이 대부분 처세, 경제에 관한 것 뿐인 건 아닌지 걱정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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