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3월 4일 목요일

[펌]로마군단의 필룸

http://brd3.chosun.com/brd/view.html?tb=FORUM102&pn=1&num=528

“로마가 세상을 정복한 것은 강력하고 무시무시한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필룸이다.”
몽테스키외가 한 말입니다. 몽테스키외는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사상가이자 로마연구에 대한 논문으로도 유명한 사람입니다. 로마시대의 유적지라면 어디서나 풍부하게 발견되는 이 창은 아직까지도 유럽의 많은 고고학자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거리로 다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그 모양과 기능이 변화되면서 로마군단의 주력 무기로 애용되어온 이 창이 그만큼 독특하다는 얘기죠.

필룸은 창의 일종인데, 던지기도 하고 직접 들고 적과 백병전에도 사용되었습니다. 필룸의 구성은 크게 세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작살처럼 생긴 길고 가는 창머리 부분(이를 편의상 창날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나무자루, 마지막으로 창날과 자루를 연결시켜주는 소켓 혹은 탕(tang)입니다. 즉 필룸은 일종의 조립식 창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창날을 소켓을 이용하여 자루에 연결하여 사용하는 것이죠. 여기까지는 크게 다른 창들에 비해 눈에 띄는 차별점을 모르겠다는 반응일 겁니다. 그럼, 필룸이 왜 그렇게 독특한 무기인지, 왜 오랜 세월동안 로마군단의 사랑을 받았으며 지금껏 많은 학자들의 논란거리에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필룸의 모양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달라졌고, 동시대에 사용된 필룸에도 몇가지 종류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원전 2세기의 그리스의 역사학자인 폴리비우스는 필룸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필룸은 창날이 아주 긴 창으로 소켓으로 자루에 꽂는다. 소켓은 길이가 약 19인치로 전체 무기 길이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소켓은 아래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두꺼워져 맨 아래부분은 손가락 세개 정도의 두께가 된다.”

필룸이 시대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변한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크게 구분하여 3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폴리비우스가 묘사한 필룸으로 소켓을 이용해 자루에 창날을 씌워 고정하는 형식이고, 둘째는 소켓 밑부분에 둥근 쇠뭉치를 감아놓은 것, 세째는 소켓 대신 탕(칼이나 호미의 슴베)이라고 하여 창날의 밑부분을 납작하고 넓게 펴서 이를 자루사이에 넣고 고정시키는 방식입니다. (아래 그림 참조)

3가지가 각각 모양이 다르지만 필룸이 가지는 공통된 특징은 창날이 아주 가늘고 길다는 것과 소켓이든 탕이든 자루와 창날을 연결하는 부위가 비정상적으로 크고 무겁다는 겁니다. 이것이 또한 필룸이 다른 여타의 창들과 구별되는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합니다.

그럼, 로마의 병사들은 왜 이런 필룸을 가지고 전투에 임했을까요. 모든 병장기는 그 쓰임새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게 마련입니다. 뾰족한 무기는 찌르기 위한 것이고, 무거운 무기는 힘껏 내려쳐 그 충격력으로 상대를 파괴하는 것이고, 예리한 날을 가진 칼은 적을 베기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필룸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모양도 그 나름의 쓰임새가 있었습니다. 필룸의 사용법을 당시의 전투상황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로마군단과 적의 대군이 서로 평원에서 마주칩니다. 당시의 전투는 대부분 밀집대형으로 이루어진 보병전이었습니다. 대회전이라고 하죠. 로마군단은 허리에 짧은 칼이 글라디우스를 차고 있습니다. 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검투사 막시무스가 사용했던 바로 그 칼입니다. 짧지만 폭이 넓고 양날검이어서 근접전에서 찌르기에는 아주 좋은 무기입니다. 한손에는 방패를 들고 있습니다. 다른손에는 필룸을 들고 있군요.
필룸은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 두가지를 갖추고 있습니다. 가벼운 것은 1.5kg 정도고, 무거운 것은 3kg까지 나가는 것도 있습니다. 길이는 대체로 2미터 안팎입니다. 멀리 있는 적을 향해 먼저 화살을 퍼붓습니다. 적은 방패로 화살을 막아냅니다. 적이 계속 가까이 다가오면 먼저 가벼운 창을 던집니다. 좀더 다가오면 무거운 것을 던집니다. 필룸은 무섭게 날아가서 적의 방패나 투구 혹은 갑옷에 꽂힙니다. 필룸의 창날은 화살촉처럼 가늘고 뽀죡하여 제대로 꽂히면 방패를 뚫고 상대의 가슴갑옷을 뚫을 수도 있습니다. 적의 방패에 꽂혔다고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필룸의 창날은 연철로 만들어집니다. 가늘고 길기 때문에 목표물에 격중하면 휘어지기 쉽게 되어있습니다. 이는 소켓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에 더욱 쉽게 휘어집니다. 즉 2, 3kg나가는 긴창이 적의 방패에 꽂혀있는데 뒤는 무겁고 앞은 가늘고 긴 창날이기 때문에 지렛대의 원리에 의해 구부러지는 겁니다. 긴창이 방패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기 때문에 이 방패를 들고 전진하는 것은 더이상 불가능합니다. 필룸을 뽑으려고 해도 화살촉처럼 생긴 창꼭지때문에 어렵습니다.
적은 할 수 없이 방패를 버리고 전진을 계속합니다. 이제는 자신을 보호해줄 방패가 없기 때문에 엄청난 공포감이 다가옵니다. 화가 난 적은 로마군이 던진 필룸을 주워서 로마군에게 던지려고 하지만 이도 쉽지가 않습니다. 땅에 떨어진 필룸도 창날이 구부러져 재활용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투가 끝난뒤 로마군단은 이 필룸을 수거하여 다시 두드리고 펴서 다음 전투에 사용할 것입니다.
적이 코앞에 오면 로마군은 글라디우스를 뽑아들고 백병전을 벌입니다. 적은 이미 방패가 없기 때문에 아무래도 방어가 취약합니다. 창을 미처 던지지 못한 로마군은 필룸을 단검을 장착한 소총처럼 사용하여 적을 찌르거나 내리치기도 합니다. 적은 마침내 많은 사상자를 내고 물러갑니다.』

이처럼 필룸은 로마군단의 전투력에 있어 아주 큰부분을 차지합니다. 필룸은 적의 방패나 몸, 혹은 땅바닥에 꽂힌 뒤 쉽게 구부러지도록 일부러 만들었습니다. 구부러지지 않더라도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모습을 생각하면 그 방패는 더 이상 들고 못 움직이겠죠. 구부러지기 쉽게 만든 것은 적이 다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과 적의 방패나 움직임을 둔화시키기 위한 목적이죠. 필룸의 무게도 다양한데 대개 2kg정도 입니다. 창날만 따진다면 300~400g정도 되는데, 일부러 무게를 더하기 위해 소켓 위에 철로 된 띠를 둘렀기 때문에 무거운 것입니다. 나무자루 자체의 무게도 있죠. 나무는 주로 서양물푸레나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투창으로서 뿐만아니라 백병전에도 사용되었는데 폴리비우스의 표현에 의하면 필룸의 소켓부분으로 내리치면 적의 칼날이 목욕할 때 사용하는 때밀이 기구처럼 움푹 패였다고 합니다.


# 예전에 제가 소켓의 연결못을 나무못으로 해서 구부러지거나 뿌러지기 쉽게 했다고 한 것은 번역상의 착오였던 것 같습니다. 나무못이 아니라 소켓과 철제 테두리의 무게, 그리고 나무자루의 무게에 의해 창날이 구부러진다는 걸로 보아야 맞을 것 같습니다. 김명숙님의 예리한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 창이나 투창 작살과 같은 창종류의 무기는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필룸과 같은 구조를 가진 무기는 로마시대 외에는 그 예를 찾아보기가 어렵습니다. 프랑크인들이 창날 기저부에 돌기가 있는 창을 사용하긴 했습니다.  
# 전 필룸 유물을 직접 본 일은 없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무기에 대한 지식과 책, 인터넷(외국사이트)에서 공부한 것이죠. 그러니 한양 안 가본 사람이 직접 본 사람보다 더 큰소리 치는 격이 될 수도 있을겁니다. 부족하거나 잘못된 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필룸과 필라가 단수와 복수의 같은 뜻의 단어라는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럴수도 있겠네요. 4세기경 로마의 군사전문가인 베게티우스는 동로마 군대가 사용한 투창이 필라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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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의 방패를 무력화 시킨다는 점이 대단하고
내가 쓸 때는 무기지만 남이 쓰려고 할 때는 이미 무기로써 가치를 잃게 한다는 것도 대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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