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30일 목요일

냄비 걸기

나는 양손 냄비보다 한손 냄비를 좋아한다.
양손 냄비(양수냄비)는 손잡이가 2개라서 두 손으로 잡을 수 있고,
한손 냄비(단수냄비, 편수냄비)는 프라이팬처럼 손잡이가 1개인 대신 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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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손 냄비가 조리할때 더 편하거든 흔들어서 음식물을 뒤집거나 섞을 수도 있고.
양손냄비가 언뜻보기에 더 안전해보지만 손잡이가 짧아서 거의 항상 두손을 써야 한다고. 그리고 양손냄비를 한 손으로 잡으면 한손냄비를 한 손으로 잡는 것보다 위험해.

한손 냄비를 보면 손잡이 끝에 항상 구멍이 크게 뚫려있는 걸 알 수 있다.
어디에 쓰나 생각해보면 이걸 걸어둘 수가 있다.
마트에서 물건을 진열할때도 국자나 냄비를 걸어두거든. 그래야 좁은 공간에 많이 넣어두면서도 서로 겹쳐지지 않아서 쉽게 꺼낼 수 있다.
한국 서민 주방에는 별로 걸어놓는 곳이 없는 데, 서양 사람들 주방을 보면 주방가득 뭐가 걸려있다. 지진나면 와창창 떨어지기도 하고 말이지.

근데 사실 거는 게 그다지 비싸지도 않다. 보니까 우리집에는 5단 메탈렉이 있어서 피사탑처럼 철골로 되있기 때문에 갈고리를 걸 곳이 많더라고. 그리고 작년에 내가 S자 갈고리도 10개나 사왔기 때문에 거기에 걸면 된다.

http://www.interpark.com/product/MallDisplay.do?_method=Detail&sch=list&sbn=ane_prd&sc.shopNo=0000100000&sc.dispNo=008001&sc.prdNo=73315522
(10개에 800원 밖에 안하는 구나.)

대신 냄비를 많이 걸어두면 서랍장에 넣어두는 것보다 먼지가 잘 가라앉는 단점은 있지만 정말 편한 것 같애. 물이 좀 떨어지지만 설거지 후에 말리기도 더 좋고.

테이블

새로 테이블을 하나 샀다.
원래 집에 있는 거랑 똑같은 1800 x 900 x 750 짜리로.
보통 두 사람도 앉을 수 있는 큰 건데, 이리저리 책상으로도 쓰고 편해서,
주방에 두면 재료 준비나 식탁으로도 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혼자 들 수 있을 만큼의 무게니까, 사람들 놀러오면 거실로 옮겨서 써도 될 것 같고.

황당한 사용법은 침대로도 쓸 수 있다는 것.
서울대 대학원 기숙사에 가보니까 침대가 이 테이블과 거의 같은 높이와 크기를 가졌더라고.
그래서 올라가서 누워봤더니 은근히 편하다.

테이블 아래에서 자볼 생각도 했는 데, 6살때 책상 밑에서 상상하던 톰소여의 모험 속 동굴 생활이 생각나서 말이지.
그 때는 정말로 텐트 같은 걸 너무 좋아해서 마당에서 텐트 치고 놀기도 하고 그랬다. 놀이에서 중요한 것은 좋은 장난감 뿐만 아니라 상상력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장난치기를 좋아하고 그런식으로 2층 침대도 탄생 했겠지.

@ 액션 영화에서는 테이블이 쓰러지면 항상 방패나 엄폐물이 되던데.

잠긴 문

아무것도 없이 반바지/티셔츠 차림으로 복도에 나왔는 데, 문이 잠겨버렸다.
30초만에 일어난 일이라 어떻게 해야될 지 모르겠더라고.
우리집은 자동으로 잠기는 문도 아니거든. 정상적이라면 절대 잠길 수 없지.

휴대폰도 없고, 지갑도 없고, 십원도 없다.
철저한 방범으로 방범창도 안 열리고 창문도 잠궈두었네.
1층 관리실 아저씨도 없었다. 다행히 15층에 사는 친구가 있어서 찾아가서 전화기를 빌렸다. 보조키를 가지고 있을 만한 친척이 엄마랑 이모.
엄마는 외출하셨고, 이모는 엄마에게 키를 넘기셨고.
가장 가까운 친척집은 외가(외할아버지 계시는)라서 거기서 잘 생각으로 1층으로 내려왔다.
머리 속에 들어있는 전화번호가 우리집 번호랑 아버지 휴대폰 뿐이더라고. 엄마, 이모, 외가, 동생 같은 번호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자주 바뀌기도 하고 기억의 한계라서..

관리 아저씨가 자리에 이제 계시더라고. '주야'라고 써진 밤에도 하는 열쇠수리공 아저씨를 찾아서 전화를 했다. 문 앞에서 기다리는 동안 이웃집 사람도 지나가는 데, 복도 앞에서 들어가지도 않고 서성거리는 내가 이상했을 것 같다.
문이 부서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열리기를 바랬는 데, 생각해보면 이런식으로 보조 자물쇠가 또 다시 잠긴다면 그 때마다 수리공을 불러서 열어야 되잖아. 그래서 부수기로 했다. 보조 자물쇠는 부술 수는 있어서 아저씨 실력으로 열 수는 없단다. 아저씨는 마스터키나 진동으로 이리저리 떼려서 여는 자동 장치같은 게 있을 줄 알았는 데.
다행히 보조 자물쇠 이상이 맞더라고, 메인 자물쇠 이상이었으면 1개 더 부숴야 했잖아.;
아무튼 이번에는 디지털락으로 설치해보기로 했다.

드라이버를 망치로 쳐서 보조키의 열쇠구멍에 박고 스패너로 여러번 돌리니까 1분만에 열리더라고, 우유 투입구로 여는 방법도 있다고 하시는 데, 우리집은 우유 투입구도 막아뒀지.

. 보조키 부수는 비용 : 3만원
. 디지털락 새로 설치하는 비용 : 10만원
  . 배터리 : AAA 4개
  . 배터리 방전시 : 9V 전지를 이용
  . 배터리 수명 : 1년, 소모시 비상벨이 울림

2009년 7월 25일 토요일

생일케익

한국에서 생일 케익을 먹어본게 수백번은 되는 것 같다.
특히 기숙사에서 사람들과 많이 모여살면서, 회사에서 최대 30명 쯤 되는 모든 팀원들의 생일을 챙기면서, 그리고 대학원에 와서 동기들이 70명이나 되니까.

12살때까지 내 생일에는 둘 중 한 종류의 케익 밖에 먹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항상 본인이 만드신 동그랗고 커다란 노란색 빵을 주셨고,
아버지는 항상 광주에서 제일 큰 제과점(궁전제과)에서 흰색 케잌을 사오셨거든.

개인적인 경험이 그랬지만, 다른 사람의 케익을 먹을 때도 거의 대부분 동그란 케익을 먹어야 했다.

왜 한국에서 만드는 케익은 거의 대부분 동그란 걸까? (원통형말이다.)
물론 제과점에서는 토끼모양, 곰돌이 모양, 직사각형으로도 만들지만
내가 아는 길거리의 제과점(파리바게트 등..)들은 동그란 걸 제일 많이 만들고 토끼 얼굴모양도 결국은 원형(round)에 약간 변화를 준것이다.
비슷한 모양이 생각해내기도 쉽고, 대량생산도 쉽고, 포장할때도 편리할 테니까.

반면에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생일 케잌은 직육면체 모양이 더 많다.

케잌 모양이야 어떤 것이든 맛있으면 그만이지만 흥미롭지 않은가?
한국인은 서양 문화인 케잌을 들여 왔으면서 왜 미국에서 주로 만드는 거랑 다른 모양을 택했지? 한국에서 가장 큰 제과점의 공장에 설비를 넣을 때 디자이너가 그렇게 설계를 해서?

뭐 산업공학적인 내용들은 그렇다고 치고.
이제 케잌을 잘라보자.

사람들은 원통형의 케잌을 자를때 첫번째 컷은 지름(장경)을 따라 정확히 반으로 자르는 경향이 있다. 첫번째 컷은 항상 생일의 주인공이 한다.
그리고 다음 컷은 이제 아무나 하면서 나눠먹는 데, 첫번째 컷이 그렇게 되면 그 다음컷도 반지름으로 자르는 일이 주로 반복된다.
따라서 부채꼴 모양의 조각들을 사람들이 나눠 먹는 꼴이 되는 거지.

그런데 사실 부채꼴 모양은 상당히 불안정한 면이 있다.
케잌의 두께가 지금 주로 팔리는 것보다 절반쯤 얇고 부채꼴의 각도를 아주 작게 한다면 한 입에 쏙 들어가는 좋은 모양일텐데, 보통은 그보다 크게 자르거든.
그래서 먹기가 힘들다. 그리고 잘 쓰러지고 바닥에 잘 떨어진다.

우리는 왜 이렇게 먹기 힘든 케잌을 사야만 하는 걸까?

미국에서 많이 먹는 얕지만 직사각형 넓은 케잌은 자른 후에도 직사각형이라 잘 안 쓰러질것 같단 말이지.

물론 그 직육면체 케잌은 운반하기가 힘들다. 높이에 비해 너무 넓어서 한 손으로 들기가 어렵다.

한국인들은 운반의 편리성을 택했고, 미국인들은 자른 후 먹을 때 편한걸 택한건가? 아니면 넓으니까 글씨를 많이 쓰기 편하게 한건가?

그것도 그렇고..
한국인들의 케잌 섭취 습관을 생각했을 때, 케잌을 포장할때 초만 나이갯수만큼 싸주지 말고, 일회용 접시도 3~4개쯤 주고, 젓가락도 4~8개씩 끼워서 팔면 어떨까? 생일은 혼자만의 행사가 아니니까 케잌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나눠먹는 데, 접시, 젓가락을 따로 챙기려면 무지 번거롭단 말이지.
왜 제과점들은 이런 고객의 불편함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을까?

접시, 젓가락 세트를 2,000원쯤에 팔아도 될텐데, 패스트푸드점에서 세트메뉴를 고를때 항상 추천메뉴도 알려주고, 추가사항이 없는지도 물어보는 것처럼.

2009년 7월 23일 목요일

옛날 미드

이제는 옛날 미드도 많이 찾아보고 있다.
사실 simpsons만 해도 20시즌이니까. 시즌 10은 10년 전에 나온거고, 시즌 1은 20년 전에 나온거긴하지.
왠만한 유명한 미드들은 시즌 3~8까지 모두 나오기도 하고.

그보다 더 오래된 것들을 보고 있다고. 음. 1980~90년대에 나온 것들.
Startrek만 해도 그렇게 오래됐고, The wonder year도 그렇고.
이번주에 보기 시작한 건 Dawsons Creek.

이제 너무 많이 후비고 다녔더니 최근 나온 TOP 100 중에서는 거의 다 본 것 같아서 새로운 소스를 발굴하기 위함도 있고, 안 본 것들은 공포, 의학, 범죄쪽이 너무 많아서 보기 싫더라고.
1980년대로 가면 그런게 좀 적은 것 같거든.

그리고 현재만 본다고 서양인들(특히 미국인들)을 이해할 수는 없지.
사람은 누적적인 존재인데, 미국인들도 평생 드라마를 본거잖아.
자신들의 현재를 즐기면서도 그것은 과거랑 연결되어 있고, 과거를 추억하기도 하고.
요즘 나오는 것보다 속도가 조금 느리고 차분하고 상업주의에도 약간은 덜 찌든 미국인들.
정말로 많이 거슬러 올라가서 1920~70년대 것들을 보면 현재의 한국과도 mapping이 잘 돼.
한국이 50년간 그들을 따라하려고 엄청나게 노력했고 압축성장을 했기 때문에 서양인의 200년사가 우리의 50년에 모두 들어있고 그 사람들이 모두 살아있다고 하잖아.

옛날 미국드라마이긴 하지만 그 속에는 나의 친구의 모습도 들어 있고, 옆집 아저씨, 택시기사 뭐 그런 사람들의 지금의 행동과도 연결이 된다고.
요즘 미국 아버지들은 권위적인 모습이 별로 없는 데, 70's show를 보면 공화당을 지지하는 권위적인 아버지도 나오고, Dawsons Creek에는 손녀가 교회에 가지 않는 다고 서운해 하는 할머니도 나오고.

그리고 아시다시피 성문종합영어 같은 케케묵은 한국의 영어문제집은 100년 전 서구사회를 반영하고 있지.

옛날 미드도 보고, 옛날 영화도 보고.
로마의 휴일의 오드리 햅번을 분명히 젊은 시절 엄앵란씨는 따라했을 꺼라고.

내가 최신 미드만 본다면 미국의 10대나 요즘도 TV를 자주보는 사람들과만 대화가 되지만, 옛날 것들을 본다면 과거에는 TV를 많이 봤지만 지금은 잘 안보는 사람이라든지, 30~60대 사람들과도 대화가 가능하게 되는 거지.

그리고 좀 더 자세히 말해보자면,
현재의 미국 30대는 10년 전에 20대였고, 20년 전에 10대였기 때문에, 10년 전 20대를 타켓으로 하는 드라마와 20년 전 10대를 타켓으로 하는 드라마도 같이 보면 그 사람과 대화를 좀 더 깊게 할 수 있겠지.

Online-offline ratio, Online-offline gap

내가 14살 때, 아마 1995년 쯤, 방학 때 집에 앉아서 케텔 같은 BBS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 때 어머니께서 같이 나가서 공을 찰 친구도 하나도 없고 학원에서 수학 공부만 하거나 집에서 컴퓨터만 하는 걸 참 걱정하셨지. (물론 입시 공부에 해당하는 수학을 잘 한다는 것은 대견스러운 일이었지만, 친구도 필요한거잖아.)
그 때는 말하자면 Online-Offline ratio가 90:10에 가깝다고 해야겠지. Online에서만 놀고 Offline의 삶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Online에 있을 시간이 급격히 줄었어. 기숙사 학교인데 입시 공부하라고 하루 종일 교실이나 자습실에 앉혀두고 감시를 했으니까.
음 그럼 ratio가 10:90이 되네. 그래도 일주일에 몇 시간은 컴퓨터 수업이 있었으니. 그리고 내가 입시에 빠져 있는 동안 인터넷 혁명이 일어나서 사람들이 다들 e-mail을 만들고, 카페에 가입하고, 채팅을 하고, 번개를 하고, 홈페이지도 만들었지.

대학에 가서는 KAIST 교내 BBS를 엄청나게 했어, 하지만 다시 90:10이 되지는 않았지. 왜냐하면 그 때부터는 사실 online과 offline의 gap을 줄여나가기 시작했어.
Offline에서 친한 사람들이 모두 online에서 친한 사람이 되었다고, 물론 몇몇 사람은 online에서 더 친했지만. (Offline에서만 친하고 online에서 안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군. 생물과의 일부 친구들을 빼면.. 그 친구들은 대부분 의대로 편입했고.)
그렇게 online과 offline의 gap이 줄어든 행복한 시절이었지.
회사에 취직해서도 옆 사람과도 MSN, e-mail을 사용해야했지. 단지 말로만 전달되고 물질을 주고 받는 일이 아니니까. 서로 프로그램을 같이 짜고, 프로젝트 일정을 공유하고, 문서를 주고 받고 그런것들.
어떤 것은 메신저가 더 편리했고, 어떤 내용은 메신저로 하다가 안되면 직접 사람들이 내 자리를 찾아와 내 등을 두드리고 그러면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했지.
채팅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일회적이었고 다시 보거나 오프라인에서 보는 일은 없었다고.
online과 offline ratio가 아마도 60:40이 아니었을까.
IT 회사니까 하루종일 컴퓨터만 했을 것 같지만, 세미나도 있고, 회의도 있고, 카페에서 잡담도 해야 하고 뭐 그런 시간들이 있으니.

회사를 나와서 학교에 복학하고 나서 online시간이 늘었지. 왜냐면 offline의 친구들이 대전에 더 이상 없었거든.
그러다가 다시 DEET 준비를 하면서 고등학생처럼 10:90이 되서 입시학원에서 공부만 했지.

치대에 들어가니 의외로 1학년 때 시간도 있고, 학교 자체는 online을 매우 싫어하고 치의학이라는 전공의 모든 시술과 대부분의 communication이 offline에서 일어났지만 모든 수업시간에 노트북을 쓸 수 있었어. 220V 전원이 들어오는 곳에 앉았거든.
그래서 다시 online-offline ratio가 50:50이 되는 균형을 이루었지.

online-offline ratio가 50:50이 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 균형 잡힌 삶이지. 컴퓨터를 잘 못하는 보수적인 분들(인터넷 중독을 막는 법을 만들어야 된다는 분들, 인터넷/미디어에 이런 저런 규제법안을 만드는 분들)은 10:90이 적당하다고 보시겠지만 내 생각에 우리의 미래는 50:50이거나 30:70이라고. (뭐 직업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online-offline gap이라는 거지.
online-offline ratio로 봤을 때, 나는 매우 균형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지금의 상황은 예전처럼 균형적이지 않아. 왜냐면 내가 offline에서 매일 보는 치대생들은 대부분 online을 안 쓰거든. 내가 online에서 친한 사람들은 대부분 서울에 살거나, IT 종사자(혹은 공학/과학자들)니까.
결국은 내 자아도 이분화될 수 밖에 없어. 이 Gap이 커질수록 내 가랑이는 찟어지고 다중인격이 될지도 모르는 거지.

나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이 사회도 online-offline ratio도 맞춰야 하지만, online-offline gap을 줄여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사실 해법은 시간 분배라기 보다는 online과 offline 세상을 모두 편리하게 만들고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유하고 mirror image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는 거지.

정부와 민원인의 입장이라고 친다면, 어떤 일이든 online, offline 양쪽에서 동일하게 접수되고 처리될 수 있는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거지.

경영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생기면 경영학 책을 본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금은 말을 해주거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바쁘게 사는 지 그런 것들 말이지.
그리고 재미도 있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쁜 아이돌이 춤을 추고, '1박 2일' 같은 TV 프로에서 강호동이 노는 게 재미있겠지만, 나는 경영학책이 차라리 더 재미가 있다고.

뭐 나도 아주 전문적인 책을 보는 건 아니고 그냥 베스트셀러로 팔리는 것들 말이지. (베스트셀러라면 사실 보편적으로 독자(사람)들이 많이 좋아한다는 소리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예 책 자체를 읽지 않으니까. 책을 읽는 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평균보다는 나은 거라고.)

그래서 읽긴 하는 데, 좋은 말들이 역시 많아. 왜 이렇게 당연하고 좋은 말들이 많은 데, 많은 사람들은 실천을 하지 않을 까 의문이 들기도 하고, 과연 내가 속한 사회(한국사회, 그리고 내 전공관련되서.)가 이런 것들이 잘 통하는 지도 모르겠고.

내가 왜곡된 이상한 사회에서 사는 것인지, 그래도 공부해두면 알게 모르게 평생 도움이 될지 모르겠어.
나도 내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고 싶은 데, 나태해져서 안될때도 있고, 최선을 다해서 살았는 데, 그 결정에 대해 남들이 비난할 때도 있고, 손해본 것 같을 때도 있고 말이지.
뭐, 예를 들자면 나는 남는 시간에 신문을 읽었는 데, 다른 사람들은 그 시간에 술을 마시면서 자기들끼리 친해져서 나만 왕따가 되서 결국 버려진다든지 그런거.

지식이 많은 사람보다 친구가 많은 사람이 성공하는 다는 것도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실이기는 한데, 어떤 친구가 도움이 될 친구인지 그런게 어디 정해져있는 게 아니잖아. 이리저리 공부해두고 주워들은 지식 중에 세상 어떤 것이 나를 지켜주거나 도와줄지 모르는 것처럼.

내가 아는 어떤 친구는 다른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e-mail을 보내곤 하는 데, 의도와 다르게 사람들은 그 친구가 e-mail을 보내는 걸 몹시 싫어하기도 한다는 거지. 남들하고 친해지려고 어떤 행동을 하는 데, 남들은 오히려 그 행동때문에 그 사람이 싫어진다면 이거 얼마나 난감한 일이야.

내가 남들과 친해지려고 수없이 재잘거리는 말들도 남들이 듣기에는 잘난척이고 궤변이기도 하다는 거지. 그냥 남들처럼 '안녕', '괜찮아?'라고 뻔하게 routine하게 물어보는 게 낫지 괜히 도움준다고 이것저것 하는 말 싫어하는 민족이라는 거지.
그들의 반응은 '너 잘난건 알겠는 데, 그런 네 능력 따위 우리한테는 필요 없어.'라고.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이 많은 것은 과연 재주인지, 저주인지 알 수가 있냐고?
(미드 'Monk'에서 주인공이 하는 말처럼)

@ 내 인생을 경영하기 쉽지 않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