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9월 29일 토요일

영어 자막(subtitle)

. 한글자막 만들기
동영상 한글자막은 어떻게 만드나 생각해봤는 데,
영어 listening이 완벽하지 않아도 만드는 방법은 많은 것 같다.
대본을 구할 수 있다면 가장 정확할테고, 그렇지 않더라도 영어자막이 있으면 자막의 timing도 이미 맞추어져 있고 listening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없다.
특히 DVD 같은 매체나 요즘의 TV(CNN 등.)들은 시청각 장애인을 위해 자막은 거의 필수로 제공하고 있다.

. 영어자막 검색엔진
  . http://www.findsubtitles.net
  . http://www.titulkykserialum.net/en
  . http://www.subtitles-divx.net
  . http://www.divxstation.com
  . http://www.shooter.cn
  . http://www.forom.com
  . http://www.opensubtitles.org

. 영어자막
한글자막보다는 영어자막이 생략된 내용이 적고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한글자막보다 영어자막이 구하기도 쉽다.

2007년 9월 27일 목요일

Lonely planet Korea/Seoul

Lonely planet Korea와 Seoul을 사기로 했다.
내가 사는 곳이니 지도나 안내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는 데,
사실 15년을 살아도 안 가본 곳은 모르는 법이다.
아시다시피 나는 15년간 살았던 고향, 광주의 시청이 어딨는 지 지금도 모른다.
LA에서 철도역 직원에게 바로 옆에 있는 지하철 출구를 물었는 데, 그녀는 그게 어딘지 몰랐다.
2000년에 입학한 울 학교에서도 아직 내가 들어가지 보지 않은 건물이 있다.

한국인이 쓴 걸 살수도 있었지만 한국사람의 여행 패턴과는 맞긴하지만 정확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미국여행할 때 lonely planet과 한국사람이 쓴 책을 비교하면 그렇다.)
그리고 자기 사는 동네를 여행자의 입장에서 서술하기는 어렵다.

Yes24에서 샀으면 교보문고보다 6,000원이나 저렴했을 테지만 10일이나 기다리고 싶지 않아서 그냥 교보문고로 결제했다.

야밤의 산책

낮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몇 가지 사실들을 발견했다.

. 쓰레기 냄새
  밤 10시 ~ 오전 7시까지는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가장 심하다.
  왜냐하면 음식점들이 영업을 마치고 음식물을 잔뜩 버리는 시간이기도 하고,
  청소차들도 새벽이 되야 움직이기 때문이다.

  회사 1년차까지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게 좋았는 데,
  새벽에는 음식쓰레기 냄새가 너무 심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게으른 인생을 살기로 맘먹었다.

. 해장국집
  아침 일찍 일어나면 밥 먹을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 데,
  동네에 24시간 해장국집을 발견했다.
  내일 아침에는 북어해장국(3,800원)을 시켜먹어봐야 겠다.
  그리고 그 옆에 김밥집도 아침 6시에 연다.

  낮이었다면 그 가게는 그리 눈에 띄지 못해서 찾지 못했을 텐데,
  밤에 불이 켜져있는 유일한 음식점이었다.

. 약국
  동네 약국이 2개뿐인 줄 알았는 데, 1개 더 발견했다.
  다음번 생리식염수는 거기서 사야겠다.
  지금 주로 다니는 약국은 생리식염수는 900원짜리라서 그런지 선반에 있는 걸
  손님에게 직접 내리라고 셀프서비스를 시킨다. 그리고 횡단보도도 하나 건너야 했다. 조금 더 걸어도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는 편이 편하다.

. 철봉
  서울 한가운데 살면서 운동할 곳이 없다고 생각했는 데,
  옆에 있는 아파트는 산책로도 있고, 놀이터도 몇 개 있다.
  철봉에서 턱걸이라도 몇 개 하고 와야지.

. 드라이브
  차나 오토바이를 사면 밤에 빈 도로를 달려도 좋을 것 같다.
  물론 많은 폭주족들이 그 사실을 이미 알기 때문에 서울의 주요 간선도로를 점령하곤 한다.


2007년 9월 26일 수요일

여관

조선시대에는 보따리상, 과거시험응시자, 지방관리들이 이동하기 위해 주막과 함께 딸린 여관을 많이 이용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런 중세의 자취는 모두 사라지고 산골의 주막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1일 생활권이 된 지금은 여관은 주로 매춘과 외도의 장소로 많이 생각되는 것 같다.

다른 용도들을 보자면
. 콘도
수영장, 스키장, 온천, 사우나 등과 함께 노는 곳
바닷가, 해수욕장, 산 근처

. R&D
요즘은 대기업들이 본사건물이 훌륭해서 회의실도 많지만 50~70년대 성공신화들을 보면 연구원들을 여관에 가둬두고 제품개발을 했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80년대 소설작가들과 만화작가도 집에서 글이 안 써질때 여관에 1달간 여관방 잡아놓고 골방에서 글을 쓰곤한다.
드라마나 영화 스텝, 감독들도 지방 촬영때 이용하는 듯.

. MT
  대학생들이 MT 갈때 많이 이용하겠지. 다들 잠은 안자고 밤새 술퍼먹고 노는 곳.

. 스터디룸
  요즘 대학가에서 스터디룸으로 빌려주기도 한단다.

. 시설
우리나라 여관들은 가격에 비해 시설들이 매우 열악하고 마케팅이나 정보도 별로인 것 같다.
유럽, 미국만 해도 20달러 ~ 40달러면 청소년들도 youth hostel에서 편하게 묵을 수 있는 데 말이지.

내 경험을 들자면 미성년자일때 지방출신으로 전국대회는 항상 서울에서 하기 때문에 1년에 하루씩은 여관에서 자곤 했다. 일단 보호자 없이는 숙박이 불가능하고, 대부분 분위기가 좀 퇴폐적이고 지저분한 것 같다. 목욕탕, 가정집의 중간 쯤 되는 애매한 구조와 가구들이 들어가있다. 서양처럼 dormitory식도 만들고 좀 더 전문적으로 운영하면 좋을 텐데. 여행 안내책자도 팔고, 인터넷 예약도 하고, 여행 가이드를 붙여주든지, 주변 시설과 연계도 하고 말이다.

. 캠핑장
우리나라 캠핑장은 항상 군대 시설보다 약간 나은 것을 자랑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미성년자들에게는 빨간 모자를 쓴 전직 특수부대 조교들이 얼차래를 주곤한다. 손님을 그렇게 가혹하게 취급하는 곳이 또 있을까?
불편한 샤워시설, 침대도 엉망이고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아침에 줄서야 하고 찬물도 감사하게 써야 한다. 캠핑장의 소유주, 직원(빨간모자조교와 배식팀 포함), 이용객 모두 군대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보다 살짝 나은 것에 감동하면서 지낸다.
초등학생들이 왜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을 좋아하는 지 생각해봐야 한다.
(야구 방망이 찜질 받는 수학여행을 원하는 학생이 어디 있을까?)

벌(bee)에 관한 기억들

내가 벌이라는 녀석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초등학교 2학년때인 것 같다.
내가 교과서 외에 처음으로 끝까지 읽은 책이 '파브르 곤충기'였다.
말벌, 땅벌 뭐 그런 벌들이 거미와 함께 파브르 곤충기의 주인공들이었다.
그리고 모기인줄 알고 손으로 때려잡다가 벌의 필살기에 당해서 손가락이 붓기도 했었다.
처음에는 아파서 계속 긁었더니 더 부어 올라서 손가락이 굽혀지지도 않았다.
이틀간 고생하고 일주일 후 두번째 벌에 쏘였을 때는 긁지 않아서 더 빨리 나을 수 있게 됐다. 역시 사람은 경험으로 배운다.
평생 벌에 물린 적은 3번 정도 뿐인 것 같다.

. 꿀
누가 선물로 준 것인지 벌집과 함께 꿀이 가득 담겨진 사각형의 통을 받았다.
벌통을 그대로 슬라이스로 잘라서 담은 것인 것 같다. 벌에 쏘인지 얼마 안된 후 였고, 벌집의 밀랍은 별로 맛도 없고 치아에 끼고, 꿀은 너무 끈적거려서 싫어했던 것 같다.

나는 단맛을 좋아해서 커피 아메리카노에도 설탕시럽을 듬뿍 넣지만 꿀은 내 체질이 아닌 것 같다. 우유에 아카시아 꿀을 조금 넣어먹었더니 향은 좋았는 데, 머리도 띵하고 배탈이 나버렸다. 한 번이 아니라 3번이나 그런 걸로 봐서 안 맞는 게 확실하다.

. 벌집
우리집 보일러실 입구에 벌집이 생긴적이 여러번 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다마네기(양파) 자루와 테이프, 모기약, 빗자루로 무장하시고 그들을 몰아내셨다. 그리고 영광의 상처 몇 방. 요즘은 119 부르면 처리해 준다던데.

고등학교 때도 벌집과 벌들, 그리고 이름을 모를 수많은 벌레들이 많아서 석유 용매를 쓰는 모기약과 라이터로 화염방사기를 만들어서 통구이를 만드는 친구들이 있었다. 
(고등학교 기숙사는 정말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나방 100마리를 수집해서 과학전람회에 출품한 형도 있고, 뱀, 닭, 새, 고양이 등의 짐승들도 발견되었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지네 비슷한 것들도 있었다.)

. 등애
초등학교 6학년 때 친구들이 처음으로 벌과 비슷하게 생긴 등애라는 게 있다는 걸 알려준 것 같다.

. 대학기숙사
  대학기숙사에서도 종종 벌집이 발견되는 것 같다. 역시나 처리는 캠폴 아저씨에게..

. 그 밖의 벌레들(곤충들)
  초등학교 때 외가집에 가서 고추잠자리를 한참 잡던 시절이 있었다. 엄마나 이모가 잡아서 꼬리에 실을 묶어서 마치 헬륨풍선처럼 내게 건네주셨다.
  매미, 하늘소도 집 밖에서 아버지가 한 번씩 잡아주신 듯. 방부제처리를 하지 못해서 성냥갑에 넣었다가 일주일만에 썩은 냄새가 나서 버렸다.
  (그 썩은 냄새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 같다.)
  초등학교 입학하기 1년전 유치원에 다닐무렵 공벌레를 많이 본 적이 있다. 친구집 앞뜰이나 우리집 앞뜰의 흙 속에서 많이 살았는 데, 느리게 기어다니다가 건드리면 비비탄과 같은 크기로 동그랗게 몸을 말아서 딱딱한 키틴질 갑옷이 바깥을 감싸게 변했다. 어떤 친구는 비비탄 총으로 쏴서 공벌레를 멀리 날려보낼 생각도 했었다.

삼촌, 이모 - 독서와 그 밖의 것들

우리친척들 중에는 독서를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 내 주위에 있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다시 생각해냈다.
이미 초등학교 때부터 그 사람들의 책을 몇 권 빌려읽었는 데 말이지.

어렸을 때(아마도 6~10살), 막내이모와 작은외삼촌과 함께 살았었다. 소가족보다는 크고 대가족보다는 약간 작은 그런 가정이었던 셈이다.

외삼촌은 대학생이었고, 막내이모는 대기업에 다녔었다.
외삼촌 방에서 면도기로 장난을 치다가 입술이 베기도 하고 TOEFL, TOEIC이라는 이름의 책이 전공을 불문하고 모든 대학생의 책장에 한 권씩 있다는 사실에 신기해하곤했다. (마치 성경책이나 정석책, 성문종합영어, 하이탑처럼 말이지.)
대학생 삼촌들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서 먼 친척 대학생 중 하나는 솔담배 케이스(종이와 비닐)을 100개쯤 모아서 이상한 모양의 장식품을 만들기도 했고, 우리 동네에서 안파는 과자들을 집에 쌓아놓고, 구질구질한 추리닝과 덥부룩한 수염으로 이상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해댔다. 그리고 강아지를 괴롭히는 것도 좋아했다. 게을러터져서 하루종일 잠만 자거나 라면을 끓여먹고는 설겆이도 안하고 방에 쌓아뒀다.

막내이모 덕분에 약간의 문화생활을 할 수도 있었다. 직원 할인으로 전자제품을 싸게 사기도 했고, 워크맨과 전축을 처음으로 구경하고 들을 수도 있었다.
(이어폰과 음악용 디스크판도 처음으로 구경해봤다.)
이모가 내게 처음으로 소개해준 외국 그룹은 뉴키즈 언더블락이다.
덕분에 워크맨도 구경해보고 라디오, 카세트 사용법도 배워서 4학년때부터는 매일 점심시간에 클래식 음악도 들을 수 있게 됐다. 아마 EBS의 '정오의 음악선물'인가 하는 프로인 것 같다.

우리 외삼촌은 독서취향이 주로 한국역사소설인 것 같다. 태백산맥, 아리랑, 동의보감(한의학책 말고 허준의 일생을 그린 소설)을 비롯해서 최근에는 최훈의 '칼의 노래'를 읽고 계셨다.
반면 우리 이모가 우리집에 두고간 책들은 실존주의, 페미니즘이나 뭐 그런 것들인듯하다.
이방인(알베르 카뮈), 경마장 가는 길(하일지), 소설 연인, 김현희(북한 공작원, KAL기 폭파범) 등..

집에 굴러다니는 책들이므로 중학교 때 몇 권은 읽어봤다.
외삼촌 책들은 양이 너무 많았고, 이모의 책들은 너무 어려워서 다 읽어보진 못했다.

아, 생각해보면 다른 추억들도 있다.
외삼촌이 비눗방울 놀이 세트를 사준적도 있었고, 이모가 롤러스케이트장에 데리고 간적도 있다. 스케이트장은 광산구 어디 쯤 있었던 것 같은 데, 아마도 지금은 상무지구나 송정동(송정리)가 아닐까 싶다. 너무 겁나서 결국 롤러스케이트는 배우지 못했다.

과천

새로 잡힌 과외가 과천에 있어서 다녀왔다.
(음, 사실 여러 사정이 있어서 이틀만에 해고됐다.)

과천이라고 하면 왠지 서울과는 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과천 서울랜드'가 TV에서 많이 광고 됐음에도 말이지.
그리고 그 유명한 과천경마장도 있다.
외가 친척들 중 한 명도 근처에서 살았더랬다. 소설 '경마장 가는 길'(작가 : 하일지)도 있잖아.

하지만 서울대에서 관악산을 넘으면 과천이 나온다.
양재역에서 마을버스 9번을 타도 갈 수 있다.
양재시민의 숲과 코스트코 사이의 삐죽나온 땅이 과천이었던 것이다.
몰랐는 데, 양재동 ~ 강남대로에서 주행연습을 할 때도 매번 과천과 서울의 경계를 살짝 걸쳐가곤 했었다.

그 오묘한 동네에 과외받는 학생이 살고 있었다.
서울이 아니면서 사실상 서울권역인 동네라서 살만할 것 같다.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가 행정지도에만 있을 뿐 그곳을 지나가봐서는 전혀 알 수 없다. 무슨 담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톨게이트가 있지도 않고, 경기도 쪽이라고 개발이 덜되지도 않았다. 그냥 연속적인 하나의 동네다.

서울에서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건너면 경기도. 10초만에 경계선을 넘은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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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도 마찬가지인듯, NHN 본사가 서울톨게이트 상행선 오른편에 보이는 빌딩들과 고층 아파트들 중 하나였다는 사실도 알게됐다.
NHN 건물에서 창밖으로 서울 톨게이트가 보인다.

10년 전에는 다들 논밭이었는 데, 요즘은 서울 ~ 천안까지 고속도로 부근은 도시가 들어서든지, 아니면 거대한 물류창고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