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22일 토요일

24살

어이 없이 한 살 더 먹고 돌아왔다.
꼭 살아서 돌아와야지 하는 생각밖에 안들었는 데,
아무튼 오늘 생각해보니 24살, 20대 중반이구나.
확실히 나이든 느낌이다.


군대 잠시 구경갔다와서 허탈하기도 하고..
몸도 아프고 머리도 짧고 삐죽삐죽 죄수같다.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나
trainsporting의 이완 맥그리거 같기도 하고..
(물론 trainsporting은 안봤는 데,
 그리고 이완 맥그리거는 멋지게 생기기라도 했지 쩝..)
아우슈비치에서 나온 유태인 같기도 하다.
(band of brothers episode 9를 보면 나온다.)

천식

천식


병원에 가봤는 데, 폐렴은 아니고 천식이란다.
훈련소에서도 숨이 가쁘고 호흡이 고르지 않았는 데,
인후염에 천식까지 걸리다니.
손발도 다 트고 얼굴도 헬쓱하고
몸무게도 3Kg이나 빠졌다.

개미

군대에 들어가 있으면 꼭 베르베르 베르나르의 소설 '개미'의 주인공 개미가 된
기분이 든다.
꼼짝 할 수도 없고 뭐든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훈련병 11번 주현성 개미'
큼지막하게 옷에 번호 붙여서 관리된다.


개미 떼처럼 움직이고 모이고 흩어지고
기계 장치 속 같은 부속품이나 컴퓨터 데이터 packet 같다는 생각도 든다.


고지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몇 천 명씩 죽고
탱크 하나랑 몇 백 명을 바꾸고..


질리도록 똑같은 것만 반복하고 한 번 말하면 뭐든 그대로 되어야 하고
줄줄이 늘어서서 물건 나르고 돌 줍고


전우가 죽고 다쳤다고 슬퍼할 여유도 없다.
개미들처럼 그냥 서로의 몸을 밟고 올라가서 또 싸우고..
슬픔을 느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났고 승리했다는 뜻이다.
패배와 죽음 혹은 상처뿐인 승리 밖에 없다.


 


 

결벽증

결벽증


군인들은 모두 결벽증을 가지고 있다.
완벽주의자를 키우는 곳이니까.


하지만 병원의 결벽증과는 많이 다르다.
겉으로 보이기에만 깨끗할 뿐 사실 세균같은 건 득실거리니까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곳일 수도 있다.


measure(관측) -> align(각잡기, 오와 열 맞추기) -> count -> control(통제)


뭐든 줄을 세우고 숫자를 빨리세고
통제에 잘 따라온다는 느낌을 받으려고 그러는 것 같다.


의전이나 예절, 모든 절차가 규정되있어서 보수적이고 복잡하다.
마치 조선시대처럼 행사나 행진 하나 하는 데도
모두의 위치가 정해져있고
각 상황에 따른 대처 방법이 모두 메뉴얼에 나와있다.


인간을 기계나 프로그램 다루듯 한다.
프로그래머처럼 지휘관도 모든 것을 통제하고 하나씩 지시한다.
시키지 않은 건 절대 하면 안된다.
기본 자세는 무조건 부동자세.


Protocol(규약), procedure(절차)가 모두 있어서
적을 잡을 때, 놓아줄 때, 보고할 때 등..
온갖 잡다한게 다 있다.
옷 접는 방법, 놓는 순서..
모든 물건이 놓는 위치가 정해져있고 올려 놓는 순서가 있다.
칫솔, 구두솔, 슬리퍼 하나 까지 모두 위치가 있고
매 주(weekly) 잃어버린 건 없는 지 숫자를 세고 검사한다.
검사하고 또 하고 보고 또 보고
조사하고 숫자세고..
요즘은 자동으로 가능한 것도 모두 일일이 손으로 다 한다.
(RFID나 ubiquitous한 세상이 오면 군대도 좀 나아지려나?)


옷 입는 절차, 행진 방법, 팔 젓는 법, 밥 먹는 방법,
숫가락 씻는 법, 구두끈 묶는 법, 화장실 사용법,
청소 방법, 걸레질, 빨래 등..
유치원 때부터 배우는 것도 모두 다 새로 가르쳐서
새로운 자동인간으로 만든다.

훈련병

훈련병은 이등병보다 못한 정말 거지 같은 존재다.
옷도 거지처럼 아무거나 줏어입고 씻지도 못하고
매일 흙먼지를 구르고, 옷도 없으니까 빨지도 못한다.
밥 먹을 때도 구박받고 춥고 배고프고 서럽고..

 

노숙자 + 거지 + 노예 + 감기 환자 => 훈련병

 

밑바닥 인생 1개월 경험이 확실히 됐다.
쓰레기 장에서 매일 쓰레기 치우고 화장실 치우고
돌 줍고 썩은 냄새 맡으면서 구르고 뛰고
꽃동네 환자들과 거의 비슷하게 산 것 같다.

 

평시 보충역 훈련도 이정도 인데, 현역이나 전방 복무자나
실전은 더 처절할 것 같다.
전쟁 정말 무서운거구나, 절대 일어나면 안되겠다.
죽지 않기 위한 모든 짓을 다한다.
심지어 승리를 위해서는 자살도 시키는 것 같다.(특히 동양 군대는..)

 

아버지가 며칠간 쉬라고 하신 건 평생 처음이다.
맨날 꾀병이냐고만 하셨는 데,
이번에는 아들이 걱정되셨나보다. 군대 무서운 곳 맞나보다.

군대

지휘관들이 하는 말.
"민주주의 안에 군대는 있어도, 군대 안에는 민주주의는 없다."
"솔직히 전쟁이 아닌 상황에서 지금 하는 짓들은 다 쓸데없는 짓이고 불합리하고 미친짓이다.
 전쟁을 가정한다면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 외에 무슨 말도 안되는 정신교육과 훈화를 수없이 들었다.
인간 쓰레기라느니.. 개, 돼지 욕도 맨날 먹고
마초들과 보수 우익들이 아주 가득하다.
아무튼 나라를 확실히 지킬 사람들인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한 편 들었다.

 

동양의 문화답게 가미가제 정신이나, 국가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건 좀 싫었는 데, 그게 군대니까 뭐 어쩌겠나.
아무튼 내가 군인이 되기는 죽어도 싫다.

 

세상은 다 변해도 군대는 1950~1970년대에 계속 머물러있는 것 같다.
뭐 사명감과 나름대로 그들만의 세상에 취해서 장교들이나 부사관들은 잘 살고 있다.

 

쓸데없이 운동장 돌은 왜 맨날 줍는 지,
100원짜리도 안되는 비닐은 왜 매일 걸레로 먼지를 닦는 지 모르겠다.
군인들에게 막노동을 시켜도 걸레로 먼지 닦는 시간에 더 많은 비닐을 살만큼 돈을 벌어올텐데.
아무튼 사람이랑 시간은 남아도 돈은 10원도 안 쓰는 곳이 군대다.

 

훈련병은 PX도 못쓰고 계급도 없고 담배도 못 핀다.
(뭐 나는 흡연자가 아니라 상관없지만)
무조건 최소 3명이상 같이 다녀야 하고 대부분의 장소(화장실 등..)는 소대별(40~60명) 혹은 중대별(200명)로 같이 움직여야 된다.

 

뭐든 2~3중으로 체크하는 것 믿음이 가기는 했지만
지나치게 복잡하고 보수적이고 쓸데없는 미친 짓도 많았다.

생존

아무튼 4주 훈련 살아서 돌아온 게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훈련 자체가 힘든 것보다는 너무 춥고 건조하고, 먼지도 너무 많고
환경이 열악해서 힘들었다.
4주 내내 감기는 항상 걸려서 매일 코를 훌쩍 거리고
1분마다 가래를 토하고
2주간은 거의 가슴이 찟어지게 기침하고 피 가래를 토한 것 같다.
(훈련병의 98%는 감기)
이틀간은 호흡도 힘들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군 병원에서 진료도 받고, 군의관 아저씨도 만나고
내무실에서 하루 누워있기도 했다.

 

근육 같은 건 다 멀쩡한데, 아무래도 이비인후과나 내과에 가서
폐렴이나 인후염 검사를 다시 받아봐야 겠다.
목소리도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아프다고 해서 빼주는 곳도 아니고, 열외해도 그냥 편히 쉬지도 못한다.
화장실 가는 것도 모두 통제당하고 소변은 1~3시간에 한 번은 보지만
대변은 저녁시간이나 밤에 겨우 볼 수 있었다.

 

불침번은 한 15번 한 것 같고, 외곽근무는 4번쯤 섰다.
숙영은 몸이 아파서 빠졌고,
주간 행군 뒤에 병원에 갔고,
야간 행군은 의외로 멀쩡하게 마쳤다.

 

약도 무진장 많이 가져갔는 데, 감기약과 비타민, 칼슘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먹었다.
밥 외에는 먹을 것이 전혀없기 때문에 밥 먹는 량도 2배쯤 늘어난 것 같다.
단체급식이고 맛이 없어서 그런지, 무진장 짜게 만들어서 국은 거의 소금뿐이었다.

 

동상은 안 걸렸지만 매일 손가락, 발가락이 칼로 파듯 시렸는 데,
손가락 중 몇 개는 완전히 갈라져서 키보드를 치기도 힘들다.

 

여유시간도 거의 없고 샤워는 2주에 한 번 시켜주고
세수는 2~3일에 한 번 한 것 같다. 매일 군화닦고 청소하느라 내 몸을 돌볼 시간은 없었다.
처음 2주간은 너무 긴장해서 죽었는 지, 살았는 지, 피곤한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2주 후 부터는 꿈도 좀 꾸고 불침번 때 졸기도 했다.
4주차에는 지루하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고 어느새 훈련이 끝났다.

 

쉬는 시간이 훈련시간보다 더 추워서 힘들었다.
하루 12시간 영하 20도~영하5도 되는 곳에서 뛰고 구르고 숨쉬고.
내무실도 너무 건조했다. 매일 소리지르고 먼지마시고 건조하고 추운 곳에 있어서
호흡기가 완전히 상한 것 같다.
체력은 좀 늘었는 데, 호흡기가 망가져서 오래달리기 기록은 4주 후에 더 저조해졌다.
몸무게도 많이 빠졌을 것 같다. 일단 나온 배가 완전히 들어갔고
얼굴도 좀 헬쓱하다.

 

겨울이라 별로 타지는 않았고
자다가 깨서 새벽에 눈치운 건 2번 있었는 데, 졸려 죽는 줄 알았다.
역시 훈련보다 환경과 눈이 제일 무서웠다.

 

공포 분위기 속에 매 시간 욕먹고, 얼차레 받고 구르고 지저분하게 있다가
각잡고 손가락 까닥 없이 부동자세로 있고,
집합해서 머릿수 세는 게 일이 었다.

 

하루는 조리병 보조로 끌려가서 쓰레기 더미 속에서 구르고
연탄, 나무 때는 곳에서 매운 것 참아가며 앉아서 수업듣고
학과 수업도 졸려 죽는 줄 알았는 데, 졸면 군기교육대라서 겨우 참았다.

 

아무튼 높은 사람 나타나면 고생이다.입소 둘째날 사단장이 와서 아주 미치는 줄 알았다.
잠도 못 자고 총도 일찍 받아서 진도도 미리 나가서 제식 훈련 받고
퇴소식도 30분 행사하는 데, 6~8번이나 전체 행사를 연습해서 3~4시간 동안
한 것 또 하고 또 하고..
아주 미칠 때까지 반복하는 게 군대인 것 같다.
조교들은 그 짓을 매달해서 제대할 때까지 20번이나 반복한다니 돌아버릴 것 같다.

 

아마 죽겠다고 끝까지 버텨서 화생방, 숙영은 열외했고 병원도 다녀오고
그나마 안 죽고 살아왔다.
휴가내고 집에서 좀 쉬어야 겠다.

 

내무실 온도는 0도 ~ 18도 라는 데, 습도가 낮아서 마치 무슨 동굴에서 사는 것 같았다.
그리고 매일 문 열면 한 여름 냉동실처럼 찬 수증기가 들어와서 깜짝 놀랐다.
열어서 창문이 안 열리고 커텐이 딱딱하게 얼고..
호수에 수류탄을 던져야하는 데, 호수가 얼어서 얼음 위에서 수류탄이 터지고..

 

옷도 둔하게 무진장 많이 껴입었는 데, 사제옷과는 달아서 무겁기만 하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손발이 다 갈라져서 앞으로 약 좀 바르고 살아야 겠다. 아파 죽겠다.
겨울에 간 건 정말 큰 실수인 것 같다.
겨울이라 춥다고 하면 방한 체조시킨다고 팔굽혀펴기도 더하고, PT체조도 더 많이 했다.
감기 걸렸다고 하면 군기가 빠진거고 허리가 아프면 증명할 길이 없으니 쓰러질때까지 그냥 뛰었다.